260602 고전 1:10-17 그리스도의 몸은 나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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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은 나뉠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장 10-17절)
오늘 우리는 매우 중요한 말씀 앞에 섰습니다. 교회가 왜 아프고, 갈등하게 되는지, 왜 분열하게 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이 본문에 담겨져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 세상 사람들이나 모두 동의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해관계로 뭉치고 이해관계로 갈라집니다. 혜성교회 정명호 목사님은 자신의 말 한 마디면 좌파와 우파를, 기성 세대와 다음 세대를 찢어 놓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집단들이 각자의 이익이나 이해관계로 뭉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십자가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랑이 넘쳐나야 할 교회 안에서 다툼이 생기고, 상처가 생기고, 서로 편이 갈라져서 대적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고린도교회도 그랬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나는 게바(베드로)에게 속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 그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정말로 그리스도의 몸이냐?” “십자가보다 사람을 더 붙들고 있지는 않느냐?”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의 분열의 영이 떠나가고, 십자가 중심의 하나된 공동체로 세워져 가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외부의 핍박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입니다. 10절에,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권하노니”라는 말은 단순한 부탁이 아닙니다. 바울의 절박한 외침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갈라지고 있었는 것을 그가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많았습니다. 능력도 있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안에 사랑이 없었습니다. 겸손이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 됨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화려했지만 깨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외부의 핍박이 아닙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서 서로 미워하게 만들고, 비교하게 만들고, 편을 가르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가 가장 쉽게 사냥하는 대상은 무리에서 혼자 떨어진 동물이라고 합니다. 무리에서 혼자 떨어진 순간 공격당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약한 동물이라도 집단으로, 때로 덤비면 강한 사자도 어찌할 수 없게 됩니다. 사탄도 똑같습니다. 교회를 갈라놓고, 관계를 끊어놓고, 마음을 분리시킨 후 공격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가 되라고 말합니다. 사람 중심의 신앙은 반드시 분열을 만듭니다. 12절에,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이름이 아닙니다. “사람 중심 신앙”이 문제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또한 아볼로는 설교를 잘했습니다. 그리고 게바(베드로)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절대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목사도 중요하고 리더도 중요하며 영적 지도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심은 언제나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면 실망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신앙을 가집니다. “저 목사님이 좋아서 교회 다녀요.” “저 목자 목녀 때문에 믿음 생활을 해요.”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앙의 중심이 되면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든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믿음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 교회를 사랑합니다.”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가 사라질 때 교회는 분열합니다. 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충격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스도가 나뉘었느냐?”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자기 편을 만들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분열하는 이유는 십자가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교만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고,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내가 옳다.”보다 “주님이 옳으시다.”를 말합니다. “내 자존심”보다 “교회의 하나 됨”을 선택합니다. 성숙한 신앙은 나의 의견을 끝까지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14-15절에,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은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내 이름이 높아지는 건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 시대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는 시대입니다. 조회수, 인지도, 영향력, 팬덤.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내 이름 말고 예수님의 이름만 남아야 한다.” 세례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것이 진짜 사역자의 마음입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회의 본질은 ‘복음 전파을 통해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입니다.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 편이냐가 아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복음 전파를 통한 영혼 구원이다.” 교회는 정치 단체가 아닙니다. 친목 모임도 아닙니다. 사람을 자랑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십자가를 증거 하는 곳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이 공동체를 살리는가?” “이 행동이 복음을 드러내는가?” “자존심보다 영혼 구원이 중요한가?” 성숙한 성도는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고린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고린도교회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에도 편 가름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서로 비교함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미움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내가 옳다”는 교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앞으로 돌아오라.”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는 모두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용서받은 죄인들이 함께 예수님을 바라보는 곳입니다. 교회인 우리는 사람의 이름 아래 모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보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나의 자존심보다 교회의 하나 됨을 붙드십시오. 비판보다 복음을 선택하십시오. 편 가르기보다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은 나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다시 십자가 중심으로 하나 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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