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15 시 15:1~5 성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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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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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도 있지만, 보통 하나님의 자녀된 개개인을 성도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1절)
'주의 장막'은 당시 '성막'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성막은 '솔로몬 성전'으로 바뀌었고, 오늘날에는 '성전'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머무나요?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사심을 인식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어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보았습니다.
또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에 모든 삶에 '절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가장 최고의 열매가 '절제'입니다. 멈춰야 될 때 멈추고, 가야 할 때 가야합니다. 온전히 성령님의 다스림 아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존귀한 자로, 걸작품으로 만드셔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망가진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때, 다시 하나님의 원형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악한 영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예수 이름으로 끊어낼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내가 누구인지 먼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 순수함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2~6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2절)
정직과 공의와 진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을 세상은 어리석다고 하나, 결국 하나님 앞에서 정직과 공의와 진실을 행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속이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3절)
우리의 '언어'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말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잡으면 안됩니다. 성도를 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사이에 서로 꼬투리를 잡아 비방하면 안됩니다. 상대방의 허물을 들춰내고 비난하고 비방한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할 때 바뀝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면 눈을 감읍시다. 왜냐하면 그 허물을 말하기 시작하면 그 말을 내가 먼저 듣기에 내가 병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는 말에 내 심령이 죽기 때문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기도합시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4절)
'망령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질서 없이 자기 멋대로 사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멸시하라는 것은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서원이 있다면 힘들 때라도 지켜야 합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5절)
불쌍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꾸어주면서 복리의 이자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뇌물을 통해 죄 없는 사람을 죄 있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런 자들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1절)
'주의 장막'은 당시 '성막'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성막은 '솔로몬 성전'으로 바뀌었고, 오늘날에는 '성전'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머무나요?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사심을 인식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어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보았습니다.
또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에 모든 삶에 '절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가장 최고의 열매가 '절제'입니다. 멈춰야 될 때 멈추고, 가야 할 때 가야합니다. 온전히 성령님의 다스림 아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존귀한 자로, 걸작품으로 만드셔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망가진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때, 다시 하나님의 원형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악한 영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예수 이름으로 끊어낼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내가 누구인지 먼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 순수함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2~6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2절)
정직과 공의와 진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을 세상은 어리석다고 하나, 결국 하나님 앞에서 정직과 공의와 진실을 행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속이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3절)
우리의 '언어'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의 삶에서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말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잡으면 안됩니다. 성도를 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사이에 서로 꼬투리를 잡아 비방하면 안됩니다. 상대방의 허물을 들춰내고 비난하고 비방한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할 때 바뀝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면 눈을 감읍시다. 왜냐하면 그 허물을 말하기 시작하면 그 말을 내가 먼저 듣기에 내가 병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는 말에 내 심령이 죽기 때문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기도합시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4절)
'망령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질서 없이 자기 멋대로 사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멸시하라는 것은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서원이 있다면 힘들 때라도 지켜야 합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5절)
불쌍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꾸어주면서 복리의 이자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뇌물을 통해 죄 없는 사람을 죄 있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런 자들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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