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5 고전 9:24-10:13 신앙의 경주에서 끝까지 승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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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경주에서 끝까지 승리하는 사람 (고린도전서 9장 24절~10장 13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구원은 값진 것이며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구원받았다.”는 확신 속에서 한 가지 거대한 영적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안일함”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영적 안일함에서 벗어나 영적 경주에서 낙오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결을 가르칩니다. 첫째로, 우리는 향방 없는 달음질을 멈추고 ‘절제’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성도의 삶을 '경주'에 비유합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핵심 주제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절)입니다. 당시 운동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10달 동안 엄격한 식단 관리, 금욕, 피나는 훈련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고작 며칠이면 시들어버릴 “썩을 승리의 면류관”이었습니다. 하물며 썩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아무렇게나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내 몸을 쳐”의 의미는 권투 선수가 상대 선수의 눈 아래를 쳐서 멍들게 하듯,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사정없이 쳐서 굴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신앙이 성장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굴복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어떠한 일에 쏟아붓고 있습니까? 주님과 상관없는 일에 나의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면서 말씀 읽기와 기도에는 10분도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향방 없는 달음질”(26절)이고, 또한 세상일에 대한 염려로 마음을 다 쏟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도“향방 없는 달음질”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소욕들을 치고 복종시켜야 합니다. 화가 날 때마다 말을 뱉어버리는 버릇, 미디어를 끊지 못하는 중독적 습관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고 복종시키는 “영적 다이어트”를 오늘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과거의 은혜에 안주하지 말고, 광야의 실패를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세례를 받았고, 성찬(예배)에 참여하기 때문에 절대 안전하다고 믿는 영적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출애굽 세대 역시 똑같은 특권을 누렸음을 상기시킵니다. 10장 1절에,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은 대단한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세례),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으며(성찬),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 반석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5절에,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지만, 광야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오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멸망한 4가지 결정적인 이유를 고발합니다. 우상 숭배, 음행, 주를 시험하는 것, 원망입니다. 바울은 이 부끄러운 역사가 단순히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한 “본보기(거울)”이자 “경고”라고 말씀합니다.(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는 영적 확신에 취해 광야를 무시하다가 다 엎드러진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과거의 은혜, 과거의 뜨거웠던 체험만 믿고 방심하다가는 한순간에 영적으로 파선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매주 드리는 예배가 지루해지고, 감사가 사라진 그 자리에 “원망”과 “비교로 인한 시기 질투”가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광야 1세대의 원망은 결국 불신앙의 증거였습니다. 입술의 원망을 멈추고 회개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선 줄로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본문의 가장 강력한 경고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가장 좋아하는 타이밍은 우리가 영적으로 가장 충만하다고 느낄 때, 혹은 내 삶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자신할 때입니다. 다윗이 언제 무너졌습니까? 골리앗과 싸울 때가 아닙니다. 사울 왕에게 쫓기며 광야에서 잠을 잘 때가 아닙니다. 전쟁은 부하들에게 맡겨두고, 왕궁 침상에서 편안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거닐 때, 영적으로 교만하며 게을렀을 때, 그의 눈에 밧세바가 발견되었고 결국 다윗은 범죄하여 무너졌습니다. “이만하면 안전하다.”, “나의 믿음은 문제 없다.”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이 영적 침몰의 시작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바울은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영적 경주를 하다가 낙심하는 이유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시험과 유혹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다(신실하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 구원의 보증입니다. 그리고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용량을 정확히 아십니다. 또한 “피할 길을 내신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탈출구(피할 길)를 이미 예비하고 계십니다. 지금 내 눈에는 사방이 꽉 막힌 벽처럼 보여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미 출구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낙심하여 주저앉는 것이 아닌 믿음의 눈을 들어 그 피할 길을 찾는 것입니다. 지금 사방이 막힌 것 같은 경제적, 건강적, 가정적인 시험 중에 계십니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원망하지 말고, “신실하신 주님이 이 시험을 통해 나를 어떻게 단련시키시고, 어떤 피할 길을 내실지”를 기도로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낙오자 없는 영적 경주, 그래서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시들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모두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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