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23 새벽기도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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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창세기 29장 21-35절)
야곱은 분노에 가득찬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했습니다. 거기에서 레아와 라헬을 부인으로 얻었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사랑 싸움이 벌어집니다. 창세기 31장 14-15절의 말씀과 같이, 레아와 라헬은 아버지인 라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낮은 자존감 때문에 야곱의 사랑에 집착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갈등과 불행의 구조 속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창세기 28장 14절에,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약속이 서로 경쟁하는 여인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절망이 있지만, 동시에 소망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있는 어두움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우리를 다루시고 연단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밝은 면만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부분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있는 고통에 대해 한탄할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1. 레아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에 대한 사랑을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의 세월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라헬을 사랑하는 우상숭배는 야곱의 인생을 망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모든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레아였습니다. 창세기 29장 17절에서,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라고 말씀합니다. 레아의 외모는 볼품없었고 라반은 사랑받지 못하는 딸 레아를 결혼시키기 위해, 야곱을 속였습니다. 그는 야곱이 라헬에 대하여 사랑에 빠진 점을 감쪽같이 이용하여 7년을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첫날밤에 라헬 대신에 언니 레아를 들여보냈습니다.(23절) 라반은 펄쩍뛰는 야곱에게 7년을 더 봉사하라고 말했습니다.(25-27절) 7일 후에 야곱은 레아가 아닌 다른 아내인 라헬을 취하기 위해 라헬에게로 가버립니다.(28절) 레아는 한마디로 아버지가 기뻐하지 않는 딸입니다. 아버지가 원하지 않았던 딸은 이제는 남편도 원하지 않는 아내가 됩니다. 30절에,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레아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레아의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의 행복의 기준은 야곱의 사랑을 얻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래아는 야곱의 사랑에 집착합니다. 레아가 야곱의 사랑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아기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레아는 라헬만 사랑하는 야곱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레아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남편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좌절과 상처만 쌓여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야곱의 가정처럼 부부 사이에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가까운 사람과 관계의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경제적인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까? 자녀의 문제로 낙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우리를 배신하고 실망시킬 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절망적인 상황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이고 고난은 하나님께 가까이 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장입니다.
2. 레아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문제만 바라보면 슬퍼지기만 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문제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랄 때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시편 121편 1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면 그가 위로해 주십니다. 31절에,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고 말씀합니다. 레아는 하나님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여호와’는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하여 주신 이름, 약속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레아는 절망의 문제로 힘들었지만, 약속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붙들었습니다. 레아가 아이를 낳는 것으로 남편의 마음을 얻고자 하였던 것은 분명히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안타까운 사연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녀의 잘못된 방법을 통해, 그녀의 눈높이로 그녀에게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31절에, 레아가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보신 하나님은 그녀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32절에,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레아는 아들을 낳아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주목과 관심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첫째 아들인 르우벤을 낳게 하셨습니다. “르우벤”의 뜻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레아에게 ‘르우벤’을 주시며 그녀를 돌보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르우벤을 통해 야곱의 마음을 얻기만 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들만 낳으면 남편도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내 불행한 삶도 해결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낳고 또 낳았습니다. 33절에,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아기를 낳을수록 레아는 지옥 같은 외로움 속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갈망하는 남자가 자신이 평생 따라갈 수 없는 것을 가진 여자의 품에 안겨 있으니, 그 모습을 봐야 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지옥의 고통이었습니다. 날마다 심장이 비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누군가가 자신의 고통을 알아봐 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둘째 아들인 “시므온”을 낳게 하셨습니다. “시므온”의 이름의 뜻은 “내가 듣고 있다.”입니다. 하나님은 시므온을 통하여 레아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의 소리를 듣고 계심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레아는 단지 아들을 낳아 ‘아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시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도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녀는 더욱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제거하려는 어떤 인간의 노력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의지하는 사람은 인간이므로 우리가 기대하는 구원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서 채움을 받으려 한다면 또다시 공허해지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레아는 남편과 잠자리를 했지만 그의 마음은 자기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의 사랑과 헌신은 레아가 아닌 라헬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다시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레아는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아기를 낳음으로써 남편 야곱의 마음이 자기에게 와서 ‘연합하기’를 원하였습니다. 34절에,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째 아들을 주시자 레아는 그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습니다. “레위”라는 이름의 뜻은 “연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받고 있는 레아와 함께 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연합하면, 레아의 문제는 이제 하나님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아는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레아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레아와 연합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레아의 마음은 항상 공허했고 삶도 여전히 불행하였습니다.
3. 이제는 레아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치고,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은 레아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께서 네 번째 아들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레아의 반응이 다릅니다. 35절에,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라고 말씀합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양”입니다. 지금까지 레아는 아들을 낳을 때마다 남편의 마음이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남편의 눈치만 보면서 눈물로 살았습니다. 레아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소용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아 주시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시고, 자신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며, 자신과 연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이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닫게 고백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넷째 아들 유다가 태어났을 때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이름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슬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찬양으로 바뀌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레아는 남편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기대는 산산조각 깨어져 버렸습니다. 레아는 평생 동안 사람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부질없는 것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레아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유다를 낳은 후에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습니다. 레아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의 위로와 축복이 그녀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녀가 남편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의 아들들의 이름에 담겼던 그녀의 바람은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녀의 넷째 아들인 유다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축복받은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다 지파에서 다윗과 솔로몬이 태어났고, 온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레아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녀의 후손의 계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내게 실수가 있고, 상처가 있을지라도, 눈물과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아니하십니다. 시편 34편 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레아의 소망은 남편을 통해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녀를 보시고 들으시고 함께 하시어 이루어 주시고 슬픔을 기쁨의 찬양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람에게서 위로와 보상과 칭찬을 받으려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위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레아처럼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할 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에게 나아가 모든 문제를 다 고하므로 위로받고 사랑받는 존귀한 자녀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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