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2 고전 7:25-40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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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법 (고린도전서 7장 25-40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싶은 핵심 구절은, 31절에,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입니다.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기차를 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목적지까지는 고작 30분이 걸립니다. 그런데 그 기차에 타자마자 가방에서 커튼을 꺼내서 창문에 달고, 벽지를 바르고, 바닥에 카펫을 깔며, “여기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아야지!”라고 말하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쳐다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곧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바로 ‘곧 내릴 기차’와 같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목적지를 향해서 달리는 임시 열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이라는 열차 안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집을 꾸미고, 차를 사고, 통장을 채우고, 인간관계에 목을 매며 살아갑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곧 지나갈 이 세상의 형편에 영혼을 빼앗겨 있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바울의 네 가지 영적 권면을 묵상하기를 소망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임박한 환난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26절에,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와 초대 교회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박해와 사회적 외면이라는 거대한 환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목숨마저 잃을 수도 있는 위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더 어렵게 만드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의 목숨을 버리기는 쉬워도, 나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굶주리거나 사자 굴에 던져지는 것을 보면서 믿음을 지키기란 인간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8절에, 결혼은 죄가 아니지만, 다가올 환난 속에서, “육신에 고난이 있으니 나는 너희를 아끼는 심정으로” 독신을 조심스럽게 권면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폭풍우와 같은 환난에서 살아남기를 원했기에, 삶의 구조를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로마 시대의 성도들과 같이 직접적인 신체적 박해를 받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도들이 마주한 환난은 더욱 교묘합니다. 그것은 ‘풍요라는 이름의 환난’이자 ‘세속화라는 이름의 폭풍우’입니다. 지금 우리의 결혼 생활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서로의 안락함과 세상적 성공만을 추구하느라 영적으로 잠들게 만드는 박해가 되고 있습니까? 혼자 있는 독신의 시간을 나의 쾌락과 외로움을 달래는 것에 소모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손과 발이 되기에 가장 자유로운 상태임을 깨닫고 모든 시간과 감정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9-31절에, 바울은 “~없는 자 같이 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우는 자는 울지 않는 자 같이, 기쁜 자는 기쁘지 않은 자 같이 살라고 합니다. 이것은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살라거나 감정을 숨기는 금욕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겪는 슬픔과 기쁨, 소유와 소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슬픈 일이 생기면 인생이 끝난 것처럼 절망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교만해집니다. 돈을 벌면 그것이 내 인생을 지켜줄 방패인 양 의지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세상의 기쁨과 슬픔 너머에 있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의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거룩한 초연함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아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땀을 흘리며 정성껏 모래성을 쌓습니다. 그리고 “이건 내 성이야!” 하며 기뻐합니다. 옆의 아이가 내 모래성을 밟으면 화가 나서 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가 지고 어머니가, “저녁 먹으러 가자!” 하고 부르면, 아이들은 미련 없이 모래성을 두고 집으로 달려갑니다. 어차피 밀물이 밀려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쌓아 올리는 업적, 명예, 통장의 잔고는 해변의 모래성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날, 우리는 미련 없이 다 두고 떠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요즈음, 무엇 때문에 가장 크게 울고 웃으셨습니까? 그것 때문에 밤잠을 설치신 적은 없습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영원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모든 눈물은 닦여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과 슬픔의 감정에 지배당하지 말기 바랍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돈과 명예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잠시 맡겨두신 청지기의 재물입니다. 그것들을 다 가지고 무덤에 가지고 갈 것처럼 움켜쥐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베풂으로써 영원한 하늘 창고에 쌓아두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염려에서 벗어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2절에서, 바울은 결혼한 자와 독신 자의 차이를 “염려와 마음의 갈라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세상 일, 즉 배우자와 자녀를 부양하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씁니다. 그것은 죄가 아니라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마음이 갈라지는 것(34절)”이 영적으로 긴장감을 만듭니다. 반면에 독신은 오직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영적 단순함”의 강점이 있습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마음은 몇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까? 몸은 이곳에 앉아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오늘 있을 회의, 밀린 공과금, 인간관계의 갈등을 염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싱글 청년들은 혼자 있으면서 누릴 수 있는 영적 집중력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주님과 깊이 소통하고, 공동체를 섬기며, 선교적 삶을 살기에 가장 좋은 황금기입니다. 부부들은 함께 앉아서 기도하는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세상의 염려로 마음이 갈라질 때마다, 부부의 대화의 주제를 “어떻게 하면 우리 부부가, 가정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로 바꾸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고 거룩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38절에, 바울은 결혼을 하든, 결혼하지 않든, 모든 것이 다 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39절에서,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핵심은 “마음을 굳게 정하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37절)” 행하는 자율성과,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39절)”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적 기준입니다.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중심이 주님께 고정되어 있다면, 결혼 생활은 거룩한 성전이 될 것이요, 독신의 삶은 아름다운 제물이 될 것이지만, 그 중심이 흔들린다면 결혼은 영적 올무가 될 것이고, 독신은 영적 고립이 될 것입니다. 형편이 문제가 아니라 중심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금새 사라지거나 지나갈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한 가지는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는(35절)” 우리의 중심과 삶의 열매뿐입니다. 오직 마음의 갈라짐 없이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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