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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

260611 고전 7:1-24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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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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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신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고린도전서 71-24)

영어 속담 중에 이웃집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인간의 뿌리 깊은 '불만족''비교 의식'을 꼬집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이웃집 사람도 자신의 집의 잔디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갈망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탐욕의 본성입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7장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깊은 영적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시는 성적으로 극도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쾌락주의였습니다. “육체는 어차피 썩어 없어질 것이니 몸으로 무슨 짓을 해도 영혼은 구원받는다.”는 방종이었습니다. 둘째는 반대로 금욕주의였습니다. 영적으로 거룩해지려면 성적인 것뿐만 아니라 결혼 자체를 멀리하고, 이미 결혼한 부부라도 각방을 쓰거나 이혼해야 하며, 심지어 노예 신분이나 이방인의 흔적을 완전히 뜯어고쳐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초 영적 성도'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이처럼 잘못된 생각을 하고 혼란에 빠진 성도들에게, 또한 오늘날에 여전히 환경의 변화만을 구하는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지금 네가 부름 받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법을 배우라!” 먼저, 바울은 독신 문제에 대해, 인간의 연약함과 창조의 질서를 고려해서 아주 현실적이고 강력한 말씀을 전해줍니다. 2절에,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바울은 결혼이 성도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울타리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4-5절에서, 바울은 자기 몸의 소유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있다고 말하고 부부의 성()은 내 권리를 주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내어줌의 신비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오직 기도하는 시간 외에 분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목적(기도)을 핑계로 배우자를 소외시키면, 그 틈을 타서 사탄이 절제하지 못하는 마음을 흔들어 음행의 시험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성장은 가정을 도외시하는 영적 이기주의가 아닌 내게 주신 배우자의 영적, 육적 필요를 성실히 채워주는 책임감에서 시작됩니다. 결혼도 은사(Gift)이고, 독신도 은사입니다. 독신은 결혼할 능력이 없어서 혼자 사는 슬픈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일을 마음의 분산 없이 집중해서 할 수 있도록 주시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반대로 결혼은 내 정욕을 다스리고, 한 사람을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듯 사랑하는 법을 훈련하도록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학교입니다. 배우자를 향한 의무(대화, 정서적 유대, 육체적 친밀함)를 영적이라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정은 사탄과의 영적 전쟁터이며, 부부의 친밀함은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 싱글 여러분, 지금의 상태를 결혼을 못 해 미완성된 상태로 보며 불행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신 특별한 은사의 기간입니다.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주님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을 원망으로 낭비하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매진하십시오. 두 번째로 바울은 이혼 문제를 다룹니다. 특히 12절부터는 불신자와의 결혼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는 예수를 믿고 나서도,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하게 사는 불신 남편이나 불신 아내와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고 느껴 이혼하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12-14절에, 불신자가 그 배우자와 살기를 원하면 버리거나 헤어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영혼이 믿는 배우자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부정한 것이 거룩한 것에 닿으면 거룩한 것이 부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시대의 관습을 초월하는 역전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시니 문둥병자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부정에 전염되는 유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거룩함이 불신 배우자와 가정을 전염시키고 변화시키는 거룩의 진원지가 됩니다. 그러한 성도가 가정을 지키고 있을 때, 그 가정 아래 있는 자녀들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게 됩니다.(14)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15절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불신의 배우자가 성도의 신앙을 이유로 도저히 같이 살지 못하겠다면서 이혼을 요구한다면, 그것 때문에 죄책감에 얽매이거나 평화를 깨뜨릴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질적 목표는 이것입니다. 지금 성도가 불합리하고 영적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결혼 생활을 눈물로 견디어내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 영혼의 구원의 가능성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가정의 구원과 거룩의 통로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한 행실과 끈기 있는 사랑을 통하여 배우자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화평을 심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환경의 종이 되지 말고, 부르심의 자리에서 머무십시오. 17절에,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고, 20절에,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 말씀하며, 24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신분이나 환경 자체가 성도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고 선포합니다. 어떻게 노예라는 신분이 믿음 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신분의 대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22-23절에, 인간 사회의 계급과 조건이 어떠하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모두 주 안에서 '하늘의 자유인'이요, 동시에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가진 조건을 탓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금 마주한 그 불완전하고 묶여 있는 환경이 바로 내가 너를 부른 선교지이자 나의 과제이다.” 환경이 바뀌어야 행복해지는 사람은 평생 환경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주님이 허락하신 자리임을 인정하고 거기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환경을 다스리는 참 자유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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