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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

260430 새벽기도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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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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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복은 무엇인가(창세기 3222-32)

 

모든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의 존재 유지와 구축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인간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모든 힘과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이름부터가 발꿈치를 움켜쥐다라는 뜻입니다. 어머니 태에서부터 자신의 생명을 위해 장자인 에서의 발꿈치를 움켜쥐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이름입니다. 자신의 잘됨을 위해서 어떠한 행동도 서슴지 않던 야곱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에서와의 재회입니다. 그는 에서가 자신을 죽일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물로 에서의 마음을 달래기로 합니다.

 1. 어떤 밤은 하나님이 사람을 다시 만드시는 밤입니다.

22절에, “밤에 일어나라는 구절을 원어 성경으로 보면, “라는 말이 밤에 일어나앞에 붙어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이 잠을 설치고 그날 밤에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아내와 여종들 그리고 아들들까지도 에서에게 먼저 보냅니다. 어쩌면 에서가 그들을 공격하면 멀찍이서 지켜보다 얼른 도망가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깊고, 어둡고, 외로운 밤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낮에는 버틸 수 있습니다. 웃으며 즐겁게 떠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밤에는 그 진짜가 드러납니다. 남몰래 우는 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몰려오는 밤, 죄책감이 몰려오는 밤이 찾아오게 됩니다. 야곱에게 그런 밤이 찾아왔습니다. 에서가 복수하려고 군사 400명을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못하는 것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었는데,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심과 염려가 생길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야곱의 심정은 매우 두렵고 외롭고 허무하기만 합니다24절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하나님은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무너진 사람을 만나시고 그를 다시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2. 하나님은 무너지고 연약한 인생과 함께 씨름하십니다.

24절에, 어떤 사람이 와서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 찾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머리를 써서, 그의 생명을 구하고자 그의 가족을 에서에게 먼저 보내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 때, 우리 자신이 주님을 붙드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주님이 먼저 찾아와 붙드심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나를 찾아오셔서, 나의 곁에서 나를 지켜보시는 주님, 우리가 고통으로 힘에 겨워서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붙잡아 주시고, 우리와 함께 씨름해 주시는 주님을 여러분은 오늘 느끼며 살고 계십니까하나님은 우리를 고치려고, 또한 살리려고, 바꾸려고, 부수고 다시 세우려고 우리와 함께 씨름하십니다. 그가 사랑하는 우리를 그냥 이 모습 이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끝까지 씨름하시며 바꾸어 주십니다. 24절에, 하나님은 야곱과 밤새 씨름하셨습니다. 왜 밤새 씨름하셨습니까? 왜 즉시 응답하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기도하게 하십니까? 왜 눈물 흘리며 기다리게 하십니까? 고치시고 새롭게 만드시려고, 축복받을 그릇으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씨름 없는 축복은 얕을 뿐입니다. 깊은 은혜는 깊은 밤에서 나옵니다. 다윗도 광야의 시간이 있었고, 요셉도 감옥의 시간이 있었으며, 바울에게는 끝내 해결 받지 못한 몸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의 밤을 지나셨습니다. 하지만 밤이 길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새 아침이 밝습니다.”

3. 끝까지, 축복하실 때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기도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25, 야곱의 허벅지를 하나님께서 치십니다. “허벅지라고 번역된 단어인 야렉엉덩이, 둔부를 의미하며 남성의 정자가 저장된 곳,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 생명을 품고 있는 곳을 가리키는 은유입니다. 그런 야렉을 하나님이 치셨다는 것은 야곱의 생명을 끊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죽이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 안에 죽어 없어져야 할 악한 습성과 자아를 십자가를 통해 죽어 없어지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실패와 죽음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생명을 부어 주십니다.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자기 부인을 통해서만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은혜가 항상 달콤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은혜는 부수는 은혜입니다. 깨뜨리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도자기 공예가의 손에서 깨진 것이 나중에 훌륭한 걸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듯이, 금광석이 뜨거운 불에 들어가야만 순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26절에, 하나님이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야곱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함께 씨름하였는데,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면, 또다시 혼자 험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이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도 연약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붙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야곱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실하게 고백합니다.

26절에,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야곱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주님, 고쳐주실 때까지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 응답해 주실 때까지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 나의 자녀를 살려 주실 때까지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 남편이 주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 교회가 부흥될 때까지 절대로 주님을 놓지 않겠습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4. 하나님은 씨름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 새 인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27-28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이것을 통하여 야곱이 날 때부터 속이는 자, 살기 위해서라면 형제의 뒤꿈치도 서슴없이 움켜쥐었던 자인 것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새 이름을 받는다는 의미는 옛 자아는 옛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새 이름과 함께 새 자아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새 이름을 주시는 것과 허벅지를 치시는 것은 사실은 같은 그림입니다. 두 가지 모두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은 야곱은 씨름 사건이 있고 난 후에는 변화된 삶을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새 이름과 새 인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실패자 사명자, 죄인 의인, 방황자 예배자, 의심하는 자 믿음으로 사는 자로 여러분과 저의 이름도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30-32절에,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과 씨름 했던 곳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이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하여 이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대면하였지만, 죽지 않고 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에서에 의해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씨름했더니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저는 다리로 아침을 맞이했지만, 그 아침은 야곱에게 새로운 소망의 아침이 되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진짜 복이란 무엇입니까? 똑바로 걸었던 야곱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인생을 살려고 하다가 실패하였지만, 절뚝거리며 걷게 된 후에, 야곱은 연약한 자이지만,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 강한 자임을 깨달았습니다이것이 죽음이고 자기 부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삶에서 반드시 일으키셔서 진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선한 죽음입니다. 화 나는 걸 꾹 참으며 말씀 조금 지켰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이 자기 부인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가능성도 없는 절름발이일 뿐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진짜 자기 부인이고 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아픕니다. 세상은 다리 저는 이들이 저주받았다고 비아냥거리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그들은 무시합니다. 하지만 진짜 복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멋지게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 업히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장자의 발꿈치를 잡는 자라는 우리의 옛 이름을 폭로하시며 우리 안에 어떠한 의도 나올 수 없음을 가르치십니다. 그 처절한 자기 부인과 죽음을 통과하는 자에게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상처들은 부끄러운 것들이 아닌 내가 지금 하나님 안에 살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내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내 상처를 간증되게 하시는 주님, 저는 다리라도 날마다 나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브니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우리의 옛 사람을 날마다 죽이고 그 죽음의 자리에 새 생명을 부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힘들고 아프지만, 오늘도 우리는 절름발이일 뿐이라고, 내 생명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베드로처럼 예수를 부인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고 고백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덮으시는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의지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새 이름 안에서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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