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10 시 10:1~18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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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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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 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는 그의 신앙과 마음의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과거에 대해서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살아가고, 미래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염려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서 염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신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부인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시며 숨어계시는 것 같은 것입니다. 오늘 시인이 그런 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1절)
시인은 환난 때에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고 손을 잡아 주시면 좋겠는데, 저 멀리 숨어 계시는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곁에 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내가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때'와 '내 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판단해 버립니다. 사람과 환경으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나의 영적인 눈이 흐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영의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나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자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숨어계신다고 생각될 때, 나의 영적인 눈이 흐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영적인 눈이 흐려져도,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2~3절)
불신자는 약한 자들에게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악인'은 자신의 욕심을 자랑하는 자이며, 하나님을 배반하여 멸시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도와주고 성공시켜 주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살펴봅시다. 나는 내 마음의 욕심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지, 내 마음의 탐욕을 비워내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는지...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4~6절)
악인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손으로 태양을 가리며 태양이 없다고 하는 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고 하며, '나는 흔들리지 않으며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환난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7~8절)
저주, 거짓, 포악, 잔해, 죄악, 이것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9절)
우리가 연약하여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을 때 악한 자의 공격거리가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동체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는 힘이 없고 연약한 자들을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녹여야 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12~13절)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해 중보하며 도와주려는 자들입니다. 철저히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16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포인트는 "하나님은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18절)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악한 대적을 물리칠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상 나라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탐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서 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겸손함으로 왕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아갈 때, 그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고 다스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더 나누고 섬기는 개인과 목장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서 염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신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부인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시며 숨어계시는 것 같은 것입니다. 오늘 시인이 그런 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1절)
시인은 환난 때에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고 손을 잡아 주시면 좋겠는데, 저 멀리 숨어 계시는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곁에 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내가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때'와 '내 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판단해 버립니다. 사람과 환경으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나의 영적인 눈이 흐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영의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나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자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숨어계신다고 생각될 때, 나의 영적인 눈이 흐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영적인 눈이 흐려져도,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2~3절)
불신자는 약한 자들에게 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악인'은 자신의 욕심을 자랑하는 자이며, 하나님을 배반하여 멸시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도와주고 성공시켜 주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살펴봅시다. 나는 내 마음의 욕심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지, 내 마음의 탐욕을 비워내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는지...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4~6절)
악인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손으로 태양을 가리며 태양이 없다고 하는 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고 하며, '나는 흔들리지 않으며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환난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7~8절)
저주, 거짓, 포악, 잔해, 죄악, 이것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9절)
우리가 연약하여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을 때 악한 자의 공격거리가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동체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는 힘이 없고 연약한 자들을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녹여야 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12~13절)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해 중보하며 도와주려는 자들입니다. 철저히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16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포인트는 "하나님은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18절)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악한 대적을 물리칠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상 나라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탐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서 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겸손함으로 왕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아갈 때, 그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고 다스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더 나누고 섬기는 개인과 목장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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