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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

260709 시 9 1-20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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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샘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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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 (시편 91-20)

오늘 본문인 시편 9편에, 다윗은 어둡고 비참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사방에는 그를 죽이려는 원수들이 가득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절망의 자리에서 절망을 노래하지 않고, 도리어 1절에,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합니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윗이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며 우리도 다윗처럼 고난 중에 찬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2절에,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지금 찬양할만한 상황이어서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3절을 보면,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라고 확신에 찬 미래형으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의 현실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내가 전심으로 감사하오며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일부가 아닌, 나의 모든 감정과 의지를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이유는 4절에, 하나님께서 그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고,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감사는 상황이 좋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하나님이라는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감정이 아닌 선택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분이 좋고 일이 잘 풀려야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의지의 선택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불평할 조건이 많습니까? 눈을 들어 하나님이 내 인생에 행하셨던 기이한 일들”, 즉 구원의 은혜와 지금까지 인도하신 손길을 묵상해 보십시오. 고난 가운데서도 반쪽짜리 감사가 아닌, 전심으로 드리는 감사를 선택할 때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원수와 어둠은 물러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윗을 위협하는 세상의 권력과 악인의 기세는 대단해 보이지만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6절에,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라고 선포합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보좌는 영원합니다(7). 그 하나님은 뇌물이나 인맥에 흔들리지 않는 '공의''정직'으로 세계를 심판하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고난 중에도 전혀 낙심하지 않습니다. 9-10절에, 하나님은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때의 요새이십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합니다. 여러분은 환난 날에 어떤 요새로 도망치고 있습니까? 우리는 위기가 찾아올 때 각자의 믿을 만한 구석, “요새를 찾습니다. 어떤 이는 이라는 요새로, 어떤 사람은 인맥이라는 요새로,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라는 요새로 도망칩니다. 그러나 세상의 요새는 결국에는 무너집니다. 지금 압제를 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고 계십니까? 영원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지금 고백하십시오. 10절에,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성품과 이름을 깊이 아는 지식이 우리를 진짜 요새로 인도합니다. 직접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공의의 재판장께 모든 재판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12절에서 하나님은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로 묘사됩니다.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눈물 흘리고,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결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13절에서 다시 한번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사망의 문턱까지 내려갔던 다윗이 원했던 것은 단 한 가지 14절에, “내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라는 고백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힘든 일을 당해 슬퍼하는 것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을 작은 유리병에 담아 보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당신의 슬픔을 기억합니다.”라는 깊은 위로의 표현이었습니다. 시편 568절에 다윗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세상은 힘없는 자의 눈물을 무시합니다. “네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은 가난하고 연약하며 소외된 자가 골방에서 흘리는 눈물 한 방울, 신음소리 한 마디를 그의 눈물 병에 담으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피 흘림과 억울함을 신원하시는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나의 부르짖음은 낙심을 향합니까, 소망을 향합니까? 다윗이 말하는 가난한 자는 단순히 경제적인 궁핍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내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니다.”라고 고백하는 영적 파산 상태의 사람을 뜻합니다. 이러한 낙심의 자리에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사망의 문턱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를 일으켜 시온의 딸의 문”(성전의 문, 찬양의 문)에 세우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끈을 놓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악인들은 의인을 잡으려고 웅덩이를 파고 그물을 숨기지만, 결국 자신이 판 그 웅덩이에 빠지고 자신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게 됩니다(15). 하나님이 직접 칼을 들고 치지 않으셔도, 악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공의가 세상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20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뿐인 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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